김창기 앨범

2013.06.10 12:35 from 분류없음

 

시간이 미친듯이 흘러간다.

정말 나이를 먹는 게 이런 건가보구나.

 

김창기의 신보를 들었다. 처음 느낌은 '아이고 이제 한 명의 아티스트와 또 작별해야 하나'였는데 몇 번 더 들어본 결과 그러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동물원 앨범처럼 여러 사람이 부르는 앨범에서 김창기의 노래를 듣는 것과 솔로 앨범을 듣는 건 많이 다른데 아무래도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하강의 미학' 앨범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고. 개인적으로는 객원 보컬을 몇 명 써보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어떻든간에 멜로디와 결합된 가사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던, 이제는 나이를 먹고 생활인이 된 사람들이 대강 감춰서 어딘가 밀어넣어두었을 것들을 끄집어 내게 만든다. 때론 휘저어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사랑 노래도 사랑 노래로만 읽히지도 않고...  

 

'오늘의 운세엔 마음 비우고 / 대세를 따르라고 하지만 / 난 이제야 움켜쥔 이 주먹을 / 누군가에게 휘두르고 싶어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면 /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었다면 / 거의 미소에 의혹이 깃들었을 때 /그때 알았어야 했어, 눈치 챘어야 했어

내가 머리만 크고 뇌는 없는 / 배만 나오고 배짱은 없는 / 그저 무료함을 달래려 만들어진 / 용도가 폐기된 눈사람이라는 걸 / 결국 녹아내릴 눈사람이라는 걸 / ……. 눈사람이라는 걸'  (눈사람)

 

실연이 아니라도, 용도가 폐기되어 길거리로 내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는 또 내가 보는 주변 세상의 이미지로 또 그 노래들을 나름대로 마음에 담아놓는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대세를 따르라고 말하는 망할놈의 세상.

 

'난 아내와 두 아이가 있어 / 집과 개 한 마리가 있어 / 정거장에서 내리지 않고 끝까지 가고 싶을 때도 있어

(중략)

난 아직도 외로워 / 난 아직도 외로워 / 이러면 안 되는지 알지만  / 난 아직도 외로워

난 아직도 외로워 / 아직도 외로워 / 이쯤 되면 안 그럴 줄 알았어 / 하지만 아직도 외로워' (난 아직도 외로워)

 

'난 아직도 외로워'는 어쩐지 가사가 영어로 된 노래 같다는 느낌이 든다말하자면 미국 영화에서 교외에 예쁜 집, 아내와 애들이 있고 개가 뛰노는 그림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외로운 남자가 영상으로 머리속에 떠오른달까.("I know this must sound crazy. But I'm still lonely.") 통근 기차에서 집에 가는 역에 내리지 않고 지나쳐 간 후 일어나는 일들이 나머지 내용이겠지. 곡 설명에 '(이 가사를 들으면)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지만'이라고 썼던데 아마 그의 아내도 그를 십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아내라고 그런 순간들이 없을리가 있겠는가사랑을 해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고, 그걸 그냥 깨닫는 게 청춘의 일이라면 내 사랑의 상대도 그 외로운 순간들을 겪을 거란 걸 알아주는 게짐짓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좀 더 나이 든 사랑의 일 아니겠는지.

 

음원 사이트에 적힌 그가 쓴 곡 설명을 보니 '또 실패할까봐, ,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들이 될까봐 두려웠다'는 말로 시작해서  '대중과 친한 노래를 만들려고 했는데, 대중이 원하지 않는 노래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제 이쯤해서 대중을 상대로 노래를 만드는 것을 그만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끝나고 있었다. 두려워도 해 낸 그에게 찬사를. 그리고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가 계속 음악인 김창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깊은곳으로 트랙백 0 : 댓글 0